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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이태형의 우주 인문학 - 클레오파트라와 시저의 사랑이 달력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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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새해가 밝으면 제일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달력을 바꾸는 일이다. 서기 2026년 1월 1일, 우리는 왜 이날을 한 해의 시작으로 정했을까? 특별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사회의 약속으로 만들어진 달력을 걸고, 그 달력의 날짜에 따라 한 해를 보낸다. 

 

달력의 날짜는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우리가 흔히 양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하는 태양력의 약자이다. 태양의 위치를 계산하고 달력의 날짜를 정하는 일은 천문학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연구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매년 여름 무렵 그 다음 해의 달력 자료를 발표하며, 달력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그 자료를 바탕으로 달력을 만든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런 달력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기원전 48년, 로마의 지배자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가 이집트를 원정하면서 서양 태양력의 역사는 본격적으로 전환점을 맞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이후 그레고리력으로 완성되지만, 그 출발점은 바로 이 시기의 달력 개혁에 있다.

 

고대 이집트는 지금으로부터 약 6천 년 전부터 1년을 365일, 12달로 나눈 달력을 사용해 왔다. 12달은 각각 30일로 구성되었고, 여기에 해의 마지막에 5일(에파고메날 데이, epagomenal days)을 더해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이 달력에는 윤일이나 윤달이 없었으며, 매년 동일한 365일이 반복되었다. 이집트가 이처럼 비교적 정교한 달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일강의 범람이었다. 나일강은 매년 거의 같은 시기에 범람했으며, 그 시기를 예측하는 일은 농경 사회였던 이집트인들에게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나일강의 범람 시기를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인 시리우스였다. 큰개자리의 으뜸별인 이 별은 ‘나일강의 별’로 불렸는데, 해 뜨기 직전 동쪽 하늘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heliacal rising, 헬리아컬 라이징)이 나일강 범람의 시작 시기와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엄밀히 말하면 이집트 달력은 태양 자체가 아니라 항성의 주기를 기준으로 한 달력이지만, 태양년과의 차이가 매우 작아 일반적으로 태양력의 한 형태로 분류된다.)

 

이집트인들은 시리우스의 주기적인 출현을 통해 1년이 약 365일이며, 실제 자연의 주기인 태양년(약 365.25일)과는 4년에 하루 정도의 오차가 누적된다는 사실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비록 윤일을 두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관측을 바탕으로 이집트 달력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체계적인 태양년 기반 달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집트 달력(시민력)은 윤일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시리우스의 헬레니컬 라이징 날짜는 약 4년마다 하루씩 뒤로 밀렸고, 약 1460년(소티스 주기)이 지나야 다시 같은 날짜로 돌아왔다. 따라서 이집트에서 행정적인 새해의 시작은 달력상의 1월 1일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시리우스의 헬레니컬 라이징이 일어나는 날은 나일강의 범람과 새로운 자연의 순환을 알리는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새해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졌다.

 

한편, 시저가 기원전 48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을 당시 로마는 여전히 달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 체계를 사용하고 있었다. 시저는 약 8개월 동안 알렉산드리아에 머무르며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통해 이집트 달력의 구조와 장점을 접하게 된다.

 

당시 로마 달력은 기본적으로 12달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해의 길이를 조정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윤달을 삽입하는 방식이었다. 이 윤달의 결정권은 사제, 특히 대사제에게 있었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임의로 추가되거나 생략되었다. 그 결과 달력은 계절과 점점 어긋나게 되었고, 일반 시민과 농민들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로마에서는 공식적으로 1월 1일을 새해의 시작으로 삼았지만, 전통적으로 2월 23일에 경계의 신 테르미누스(Terminus)를 기리는 축제인 테르미날리아(Terminalia) 축제를 지냈다. 이 날은 윤달 삽입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일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한 해의 끝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결국 시저는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온 뒤 기원전 46년, 로마 달력을 태양년 기준으로 개혁하는 대대적인 조치를 단행한다. 이미 달력은 계절과 약 3개월이나 어긋나 있었기 때문에, 시저는 그 해를 무려 445일로 늘려 조정했고, 이듬해부터 1년 365일에 4년마다 하루를 더하는 새로운 달력을 시행했다. 이것이 바로 율리우스력의 탄생이다.

 

이 개혁은 단순한 날짜 조정이 아니라, 로마 제국 전역과 이후 서양 문명 전체의 시간 개념을 바꾸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만약 시저가 이집트에 머무르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의 모습 또한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태형‧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장


[출처] 클레오파트라와 시저의 사랑이 달력을 바꾸었다!|작성자 우리글진흥원